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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귀양보낸 세종 이야기

by -일상체온-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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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귀양보낸 세종 이야기

 

때는 태종 11년 2월(1411년), 일본 국왕이 사자를 보내어 코끼리를 조선에 바쳤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코끼리가 조선에 없는 동물로 날마다 콩 4~5두씩 소비한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다.

 

농자지 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이라고 하듯이 농업이 최고의 산업이자, 국가의 운영 기본으로 중요했던 조선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콩 4~5두씩 소비한다는 것은 꽤 큰 손해였음이 틀림없다. 여기서 두란, “말”을 의미하는 한자로, 10되가 1말이고, 약 18리터의 부피가 된다. 따라서 4~5두씩 콩을 소비하는 코끼리가 그리 탐탐 치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코끼리에 치여 조선 관리가 사망하는 사건이 태종 12년 12월에 발생했으니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이듬해인 태종 13년에는 이러한 코끼리를 보기 못마땅했는지 한 신하의 요청을 받아들여 태종은 전라도의 어떤 섬으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태종은 코끼리를 육지로 다시 내보내라고 명하게 된다. 이유인즉, 풀을 먹지 않아 수척해졌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보인다고 하니, 태종은 측은지심이 생겼는지 다시 육지에서 기르게 한다.

 

때는 조선 세종 2년 12월(1420년).

 

거의 10년을 조선의 땅에서 살았던 코끼리는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라고 하는 세종 초기에 전라도 관찰사의 요청으로 삼도(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돌아가면서 기르도록 한다.

 

그러다가 충청도 공주에서 코끼리를 보살피던 중, 이를 보살피던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코끼리는 처음보다 덩치가 커졌는지 먹는 양도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끼리가 꼴과 콩을 다른 짐승보다 열 배나 먹고, 하루에 쌀 2말, 콩 1말을 먹으며, 이는 1년에 쌀 48섬, 콩 24섬이나 먹는다고 해가 되니 다시 섬으로 보내기를 간청하여 세종은 처분을 내린다. 사람에게로 따지만 ”귀양을 보낸 것"이다.

 

이때, 세종은 처분을 내리면서 어떠한 말을 했을지 상상해 보자.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그 후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코끼리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세종의 동물에 관한 배려심이 자못 큼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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