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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입동 - 입동날 김장 안하는 이유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입동

by -일상체온-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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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 입동날 김장 안하는 이유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입동
 
오늘은 입동입니다.
 
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로 이 무렵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며, 동면하는 동물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는 날이라고 합니다. 입동에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하며, 입동 당일에는 김장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속설이 내려오고 있는데요.
 
김장은 겨울을 지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였으며, 이러한 김장을 입동에 하면 겨울나기 준비를 모두 완료했다는 것이고,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입동이 곧 추운 겨울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2월까지 겨울이 너무 길게 되고, 아직 단풍도 모두지지 않은 늦가을인 입동에 김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아직 겨울이 아니기에 겨울나기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즉, 입동에 김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겨울이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나타난 입동 관련 기사를 보면, 이날 많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입동에 천둥이 치고 우박이 내렸을 때는 경계하고 수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종 9년
사립일(四立日)에는 고을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재숙(齋宿)하고 정성(精誠)을 들여 초례(醮禮)를 행하게 하다. *사립(四立) : 입춘(立春)·입하(立夏) 입추(立秋)·입동(立冬).
 
-세종 12년
입추(立秋) 날에는 가을의 신을 서교(西郊)에서 맞이하여 서호(西皓)를 노래하고, 입동(立冬) 날에는 겨울의 신을 북교(北郊)에서 맞이하며 현명(玄冥)을 노래하였다.
 
-연산 11년
세시(=설날)에 역질을 쫓기 위하여 포를 쏘는 것을 사시 개화할 때도 하게 하다.
*개화(改火) : 불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입동에는 박달나무 판에 홰나무로, 판의 구멍을 비벼 불을 냈음. 각 고을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음.
 
-명종 11년
어제는 입동(立冬)이 다된 때인데 천둥치는 변고가 더욱 심하였으니 소리를 거둘 때가 지났는데 한여름의 위세보다 더 큰 우레가 있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늘은 밝음이 있으시어 비추어 임하심에 매우 환하시다.’ 하였으니, 모르겠거니와 인사(人事)에 어떤 잘못이 있어 하늘의 노여움이 이에 이른 것입니까?
 
-선조 38년
천둥과 번개의 이변이 입동 후에 일어나니, 음양이 순서를 잃음이 이에서 더할 수 없습니다. 이 어찌 원인이 없이 그러하겠습니까. 민심의 위구(危懼)함이 이에 이르러 더욱 깊습니다. 그 까닭을 추구해 보니 이는 실로 신들이 무릅쓰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치인 것입니다.
 
-인조 4년 
추분(秋分)이 지난 이후에는 천둥·번개가 출현하지 않아야 하는데, 번쩍번쩍 우르릉 소리가 입동절(立冬節)에 심하니, 아래에서 인사(人事)가 잘못되면 위에서 천변(天變)이 응하는 것으로, 재이(災異)의 발생이 어느 일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하늘이 경계를 보임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영조 24년 
입동(立冬)의 절후가 이미 지나갔는데, 갑자기 천둥하는 재이가 있었습니다. 재이는 헛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정조 7년
때 아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여름철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비록 입동(立冬) 뒤와 차이가 있기는 하다마는, 인애(仁愛)하는 하늘의 경고가 이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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