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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 김정희

by -일상체온- 202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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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조선 후기의 문인 김정희가 그렸다는 "세한도"에 관한 내용이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글의 작가가 누군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한도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그런 글로도 쓸 수 있구나 생각했었다. 

 

사진 출처: 공유마당(https://gongu.copyright.or.kr)

 

그 당시는 아무리 글을 읽어도 말라빠진 듯한 소나무와 잣나무, 엉성하게 그려진 집 모양은 이 그림이 그려진 동기와 유래를 배웠지만, 별로 감흥이 없던 그러한 것이었다.

 

누구나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듯이, 세한도는 국보 180호이며,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 김정희가 그린 작품으로 문인화 이념의 최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는 자신의 제자였던 이상적의 변함없는 관심과 의리에 대한 보답으로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려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한도에 다시 관심이 가는 이유는 작은 텃밭을 지으면서 싹이 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후 작물을 거둘 때 드는 아쉬움과 허전함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은 느끼다가 항상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변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해야 하는가?, 변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모든 농작물과 나무가 변해야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듯이, 겨울철 잣나무와 소나무와 같이 변하지 않는 그 푸르름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그래서 이 세한도를 다시 보면서 변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한다.

 

철종실록에 1856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졸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을 짧은 글로 기록했던 사관이 그를 소식(소동파)로 생각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그는 정치가라기 보다는 시인에 가까워 보인다.

 

자료 출처: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id/kya_10710010_003

 

조선왕조실록

철종실록 8권, 철종 7년 10월 10일 갑오 3번째기사 1856년 청 함풍(咸豊) 6년 전 참판 김정희의 졸기

sillok.history.go.kr

전 참판(參判) 김정희(金正喜)가 조세(早歲)에는 영명(英名)을 드날렸으나, 중간에 가화(家禍)를 만나서 남쪽으로 귀양 가고 북쪽으로 귀양 가서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었으니, 세상에 쓰이고 혹은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고 또는 물러갔음을 세상에서 간혹 송(宋)나라의 소식(蘇軾)에게 견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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